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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류 그룹 SEIRYU GROUP 清流グループ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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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일 | 1940. 07. 11 (86주년) | ||||||||||
| 대표이사 | 세이류 이츠키(清流 樹) | ||||||||||
| 본사 주소 | 도유중앙시 중앙구 신주초 12-1 | ||||||||||
| 업종 | 엔터테인먼트 | ||||||||||
[ 재무 및 상세 정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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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눈에 보이지 않는 예술적 전통을 시대에 맞는 감각으로 이어낸다.
세이류 그룹(淸流グループ / Seiryu Group)은 1940년 7월 11일, 도유수도시에서 설립된 전통미학 기반의 영상·문화 종합 기업 집단이다. 설립 이래 세이류(淸流) 가문이 4대에 걸쳐 경영권을 세습해 왔으며, 핵심 계열사인 세이류 필름(Seiryu Film)을 중심으로 예술영화 제작, 방송 외주, 공연·극장 운영, 팬시 상품(fancy goods), 부동산 임대 등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를 운영하고 있다.
역사와 시간, 기억, 국가와 그 내의 인간의 내면을 탐구하는 작품 세계관을 구축해왔다. 작품 하나하나에 문학, 고전예술, 역사, 철학, 무형문화의 향기를 내재하는 것을 목적과 사명으로 삼아 '대중성과 품격의 교차점'을 찾는 집요한 연출력과 뛰어난 제작진의 기량으로 현재도 월본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제작사 중 하나이다.
2. 연혁
- 1940: 세이류 사쿠타로, 세이류문화사(淸流문화사) 설립
- 1945: 패전 후 미군정청 군국주의 청산 정책으로 영업 정지
- 1951: 영업정지 해제, 제한적 사업 재개
- 1952: 예술영화, 다큐멘터리 등 영상물 전문 제작사로 세이류 필름 공식 설립 및 극장 개장
- 1955: 《유성의 절(流星の寺)》, 월본 금관문화표창상 수상
- 1958: 세이류문화사 -> 세이류(淸流) 기업명 변경
- 1961: 《세토의 물소리(瀬戸의 물의 소리)》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 1965: 초대 세이류 사쿠타로 대표직 사임, 세이류 마사노리가 승계
- 1968: 서양 고전 음악 음반 취입 사업 확장, 세이류 클래식(SEIRYU CLASSIC) 설립
- 1970: 《달빛 아래 화엄경(月明かりの下의 華厳経)》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
- 1975: 서양 고전 음악 사업 철수
- 1977: 제 2 사옥(도유수도시 문영구 소재) 매입 및 운영
- 1985: 2대 오너 세이류 마사노리 사망, 세이류 노부히로 3대 대표 취임
- 1991: 세이류 노부히로, 작품 제작 및 연출 <-> 대표 이사 경영 활동 분리 발표
- 1990년대: 지상파, 케이블 방송 외주 증가, 과거 창작물 리마스터링 사업 개시
- 2001: 공연기획 및 극장 운영 사업 진출, 세이류 씨어터(SEIRYU THEATER) 설립
- 2005: 《피안의 노래(彼岸의 歌)》 35년만의 베니스 황금사자상 수상
- 2005: 세이류 그룹, 월본 국민영예상(國民榮譽賞) 수상
- 2007: 세이류 필름보관소, 세이류 박물관 개장(도유수도시 중앙구 소재)
- 2013: 3대 오너 세이류 노부히로 사임, 4대 세이류 이츠키 대표 취임
- 2020: 그룹 공식 창립 80주년 기념
3. 역사
3.1 창업·초창기 : 전시 체제와 문화 선전(1940년~1945년)
필름은 곧 시대의 거울이며, 그 거울을 닦는 손은 국가의 손이어야 한다.
— 세이류 사쿠타로, 세이류필름 창립 취지문 中 (1940)
세이류 그룹의 시초는 1940년, 퇴직 문부성 관료 세이류 사쿠타로(淸流佐久太郎, 1890~1967)가 설립한 세이류문화사이다. 당시 월본은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의 격랑 속에 있었으며, 국가 총동원령에 따라 문화 산업 전반이 강력한 국가주의적 통제 하에 놓였다. 세이류문화사는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퇴직한 고위 관료라는 배경과 축적된 인맥으로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중략 - 원문 유지)
3.2 전후 및 영업금지 기간 : 군국주의 청산과 재기의 모색(1945년~1951년)
1945년 월본 패전 이후, 미군정(GHQ)은 강력한 군국주의 청산 정책을 실시했다. 과거 전쟁에 협력했거나 군국주의를 미화했던 기업들은 영업 정지 처분을 받았고, 세이류문화사 역시 그 대상이 되었다. (중략 - 원문 유지)
3.3 영업재개·세이류 필름 설립 : 예술 영화 제작사로의 부상과 국제적 명성 획득(1952년~1960년대 초)
1952년, 월본의 주권 회복과 세이류 문화사의 영업 제한이 해제되자 세이류 사쿠타로는 영화 및 영상물 제작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세이류 필름(SEIRYU FILM)을 공식 설립했다. (중략 - 원문 유지)
3.4 순수 예술기 : 세계 양대 영화제를 석권하다(1960년대 중반 ~ 1970년대 말)
전통은 가치를 지키되, 시대와 호흡하는 방향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 세이류 마사노리, 세이류 창립 40주년 연설 中 (1980)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 말은 세이류 필름의 순수 예술기이자 예술적 정점이었다. 이 시기 그룹은 상업적 성공보다는 미학적 완성도와 예술적 깊이를 추구하는 데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중략 - 원문 유지)
3.5 세이류의 위기 : 노부히로의 승계 이후 시대의 암흑기와 개혁(1980년대 초 ~ 1990년대 중반)
1970년대 말까지 이어진 세이류 필름의 예술 영화 전성기는 1983년, 2대 오너 세이류 마사노리의 갑작스러운 뇌졸중 발병으로 인해 중대한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중략 - 원문 유지)
3.6 복합 콘텐츠 전환기
국가는 언제나 자신을 비추는 영화를 원했고, 우리는 예전에 그것을 만들어왔다. 비판을 피해선 안 되지만, 아름다움 없이도 비판은 완성되지 않는다.
— 세이류 이츠키, 세이류 창립 80주년 연설 中 (2020)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세이류 필름의 영화들은 '올드하다'는 비판에 직면하기도 했다. 전반적인 작품의 색조는 여전히 중후하고 절제된 내러티브, 보수적인 미장센, 묵직한 역사 인식을 유지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 원문 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