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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본 현대 정치의 아버지'''이자 '''[[자유민주당]]의 창립자'''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 '''월본 현대 정치의 아버지'''이자 '''[[자유민주당]]의 창립자'''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 ||
1939년 [[도유수도시]]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여 자라났다. 공무원인 아버지와 시인인 어머니를 두었고, 어머니의 영향으로 글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후 글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을 바탕으로 진로를 기자로 정하였다. 1952년 | 1939년 [[도유수도시]]에서 장남으로 출생하여 자라났다. 공무원인 아버지와 시인인 어머니를 두었고, 어머니의 영향으로 글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며 이후 글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을 바탕으로 진로를 기자로 정하였다. 1952년 도유민성소학교를 졸업하였고 1955년에는 현성중학교를 졸업하였다. 1958년에는 현성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도유대학]]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하였고, 경제학을 함께 복수전공 한 뒤 1962년에 졸업하여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1964년 군사정권이 막 시작되던 시기 [[WBS]] 공개채용 시험에 응시, 합격하게 되면서 정식 언론인으로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 ||
입사 후 [[WBS]] [[와가사]] 정치경제부에 배속되어 기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평범한 기자 생활을 하다 1967년 월본 국회에서 일어난 민주화 투쟁본부 강제 철거 파동에서 "국민 여러분, 현재 보고 계신 것은 현실입니다. 국민 여러분이 이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라는 멘트를 하며 화제가 되었고, 이후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진행력을 바탕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다. 그 뒤 WBS 간판기자로 성장하게 되었고, 1973년에는 WBS 남부월본방송 지부장까지 초고속으로 올라 뉴스룸 진행 및 '오늘의 한마디' 코너 진행을 맡으며 재치있는 풍자와 진행력으로 월본을 대표하는 언론인이 된다. | 입사 후 [[WBS]] [[와가사]] 정치경제부에 배속되어 기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평범한 기자 생활을 하다 1967년 월본 국회에서 일어난 민주화 투쟁본부 강제 철거 파동에서 "국민 여러분, 현재 보고 계신 것은 현실입니다. 국민 여러분이 이 현실을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라는 멘트를 하며 화제가 되었고, 이후 준수한 외모와 뛰어난 진행력을 바탕으로 유명세를 얻게 된다. 그 뒤 WBS 간판기자로 성장하게 되었고, 1973년에는 WBS 남부월본방송 지부장까지 초고속으로 올라 뉴스룸 진행 및 '오늘의 한마디' 코너 진행을 맡으며 재치있는 풍자와 진행력으로 월본을 대표하는 언론인이 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