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창모: 두 판 사이의 차이
보이기
편집 요약 없음 |
|||
| 117번째 줄: | 117번째 줄: | ||
그러나 군부는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결국 1975년 [[모시]] 총리에 의해 강제로 내쫓기다시피 WBS에서 퇴직한다. 이후 그에 굴하지 않고 [[월본민주화협의회]]를 창설하며 정식으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특히 와가사 지역의 항쟁을 주도하여 민주화운동의 거두로 떠올랐다. 그 뒤 1979년 [[수도항쟁]]이 일어나자 이에 동참하였고, 와가사로 항쟁을 진압하러 온 군경들을 설득하여 [[와가사 회군]]을 이끌어내 민주화에 큰 공을 세웠다. | 그러나 군부는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결국 1975년 [[모시]] 총리에 의해 강제로 내쫓기다시피 WBS에서 퇴직한다. 이후 그에 굴하지 않고 [[월본민주화협의회]]를 창설하며 정식으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고, 특히 와가사 지역의 항쟁을 주도하여 민주화운동의 거두로 떠올랐다. 그 뒤 1979년 [[수도항쟁]]이 일어나자 이에 동참하였고, 와가사로 항쟁을 진압하러 온 군경들을 설득하여 [[와가사 회군]]을 이끌어내 민주화에 큰 공을 세웠다. | ||
민주화 이후 민주화 운동가 출신, 군부 온건파 출신, 관제야당 출신 비군부 보수 정치인들을 규합하여 [[자유민주당]]을 창당하였고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월본 총리로서 집권한다. 퇴임 이후에도 막후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1980년대 월본 정치의 지배자로 군림했으나 1990년대 초 대규모 정치 스캔들인 [[구창모 게이트]]로 큰 타격을 입고 한동안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 민주화 이후 민주화 운동가 출신, 군부 온건파 출신, 관제야당 출신 비군부 보수 정치인들을 규합하여 [[자유민주당]]을 창당하였고 1980년부터 1986년까지 월본 총리로서 집권한다. 퇴임 이후에도 막후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1980년대 월본 정치의 지배자로 군림했으나 1990년대 초 대규모 정치 스캔들인 [[구창모 게이트]]로 큰 타격을 입고 한동안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 다시 정계 전면에 복귀하며 자유민주당 2기를 이끌었다. 이후 정치적으로 완벽히 재기하며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다시 정치 일선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 ||
2023년 심근경색으로 인해 의식을 잃어 도유대학병원에 입원하였으나, 상황이 호전되지 않아 2024년 8월 21일 도유대학병원에서 서거하였다. 생전 남긴 유언장에서 "만약 내가 갑자기 죽어도 후미히라 총리와 동지들이 이 나라와 당을 잘 이끌어 줄 것이라 믿는다. 민의를 무엇보다도 우선시하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 월본의 국민들은 가장 휼륭한 국민들이니 그 국민들에게 봉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며 일해야 한다. 민의를 기억하라!"는 발언을 남겼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루어졌으며 [[후미히라 겐페이]] 당시 총리 등 국가 지도층이 조문하였다. | 2023년 심근경색으로 인해 의식을 잃어 도유대학병원에 입원하였으나, 상황이 호전되지 않아 2024년 8월 21일 도유대학병원에서 서거하였다. 생전 남긴 유언장에서 "만약 내가 갑자기 죽어도 후미히라 총리와 동지들이 이 나라와 당을 잘 이끌어 줄 것이라 믿는다. 민의를 무엇보다도 우선시하고, 경제를 살려야 한다. 월본의 국민들은 가장 휼륭한 국민들이니 그 국민들에게 봉사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늘 감사하며 일해야 한다. 민의를 기억하라!"는 발언을 남겼다. 장례는 국장으로 치루어졌으며 [[후미히라 겐페이]] 당시 총리 등 국가 지도층이 조문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