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그룹/역사: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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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문서: == 각주 == 분류:기업 분류:현성그룹 분류:월본 분류:월본의 기업 === 1940년대 === 1941년 5월 1일, 윤성철은 현성그룹의 모태인 서호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한다. 창립 후 작은 철물점으로 시작한 서호공업사는 신식 물품의 수리와 일부 부품의 생산기술을 미국에서 습득하여 빠르게 들여왔으며,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외제차를 구입한 후 분해하여 구조와 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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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0년대 == | |||
1941년 5월 1일, 윤성철은 현성그룹의 모태인 서호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한다. 창립 후 작은 철물점으로 시작한 서호공업사는 신식 물품의 수리와 일부 부품의 생산기술을 미국에서 습득하여 빠르게 들여왔으며,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외제차를 구입한 후 분해하여 구조와 조립 방식 등을 분석해 나갔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국의 자동차 조립생산 방식을 습득한 월본인 개척자 2명을 영입한 윤성철은 작은 창고를 벗어나 더 확장된 곳에서 당시 월본에 있던 미군의 군수품과 자동차를 수리해 주면서 노하우와 인지도를 쌓아갔다. | 1941년 5월 1일, 윤성철은 현성그룹의 모태인 서호공업주식회사를 설립한다. 창립 후 작은 철물점으로 시작한 서호공업사는 신식 물품의 수리와 일부 부품의 생산기술을 미국에서 습득하여 빠르게 들여왔으며, 미국 자동차 제조사들의 외제차를 구입한 후 분해하여 구조와 조립 방식 등을 분석해 나갔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미국의 자동차 조립생산 방식을 습득한 월본인 개척자 2명을 영입한 윤성철은 작은 창고를 벗어나 더 확장된 곳에서 당시 월본에 있던 미군의 군수품과 자동차를 수리해 주면서 노하우와 인지도를 쌓아갔다. | ||
== 1950년대 == | |||
윤성철과 최현식, 구재학은 미군의 자동차만 수리하는 것이 아닌 직접 개발과 생산하는 일에도뛰어들면 어떻겠냐는 윤성철의 제안에 월본에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수입하려는 미국 자동차제조사와 만남을 갖게되고, 월본의 환경에 맞는 부품제작과 디자인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 윤성철과 최현식, 구재학은 미군의 자동차만 수리하는 것이 아닌 직접 개발과 생산하는 일에도뛰어들면 어떻겠냐는 윤성철의 제안에 월본에 본격적으로 자동차를 수입하려는 미국 자동차제조사와 만남을 갖게되고, 월본의 환경에 맞는 부품제작과 디자인을 해주겠다는 제안을 하게 된다. | ||
그러나 월본에는 그 누구도 자동차 관련업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나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눈길을 주지도 않았고, 반년간의 설득과 수십차례의 아이디어 제안서를 낸 윤성철과 최현식, 구재학은 미국 제조사가 주도하는 월본 최초의 승용차인 ‘W1형 승용차’ 개발에 합류하게 된다. 이때 자동차 엔진을 비롯하여 핵심기술 몇 가지를 제휴차원으로 습득하게 된다. | 그러나 월본에는 그 누구도 자동차 관련업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이나 인물이 없었기 때문에 눈길을 주지도 않았고, 반년간의 설득과 수십차례의 아이디어 제안서를 낸 윤성철과 최현식, 구재학은 미국 제조사가 주도하는 월본 최초의 승용차인 ‘W1형 승용차’ 개발에 합류하게 된다. 이때 자동차 엔진을 비롯하여 핵심기술 몇 가지를 제휴차원으로 습득하게 된다. | ||
‘W1형 승용차’는 미국에서 인기 있는 사양과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된 차량으로, 1952년 7월 미국 기업과 합작으로 지은 서호주식회사 최초의 소규모 조립공장에서 1호차와 2호차를 동시에 생산해 낸다. 1953년부터 3명의 청년이 월본 최초의 자동차를 만든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인지도가 점점 늘어났고, 1954년에는 연 500대, 1955년에는 연 1,000대, 1956년에는 연 2,500대, 1957년에는 연 4,000대를 판매하면서 말 그대로 초대박이 터지게 된다. 당시 윤성철과 최현식, 구재학은 이렇게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갖고 팔릴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 ‘W1형 승용차’는 미국에서 인기 있는 사양과 스타일을 그대로 반영된 차량으로, 1952년 7월 미국 기업과 합작으로 지은 서호주식회사 최초의 소규모 조립공장에서 1호차와 2호차를 동시에 생산해 낸다. 1953년부터 3명의 청년이 월본 최초의 자동차를 만든다는 소문이 널리 퍼지기 시작하면서 인지도가 점점 늘어났고, 1954년에는 연 500대, 1955년에는 연 1,000대, 1956년에는 연 2,500대, 1957년에는 연 4,000대를 판매하면서 말 그대로 초대박이 터지게 된다. 당시 윤성철과 최현식, 구재학은 이렇게까지 폭발적인 인기를 갖고 팔릴 것이라곤 상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 ||
== 1960년대 == | |||
1960년 2월, W1형 승용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소상공인을 위한 V1형 상용차를 만들어낸 서호주식회사는 본격적으로 차세대 모델인 W2형 승용차와 V2형 상용차를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1000만달러를 마련하여 기존 조립공장의 크기를 넘어서 종합 자동차 공장과 그 안에 개발연구소를 설립했다. W1형 승용차’ 개발과 생산을 함께 했던 미국 기업이 차세대 모델 개발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이번엔 유럽권에서 기술제휴 또는 합작으로 신차를 개발할 회사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기술제휴를 하러 나서지 않자, 윤성철은 자동차 엔진의 독자개발을 계획하게 된다. 그러나 최현식과 구재학은 그 누구도 기술제휴의 손길을 내밀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독자개발을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윤성철의 독자개발 계획을 무시하거나 반대했으며, 끝내 셋은 각기 다른 뜻을 펼치며 동업자로서의 관계를 끝맺게 된다. | 1960년 2월, W1형 승용차 플랫폼을 기반으로 소상공인을 위한 V1형 상용차를 만들어낸 서호주식회사는 본격적으로 차세대 모델인 W2형 승용차와 V2형 상용차를 개발하기로 결정한다. 당시 가능한 방법을 총동원하여 1000만달러를 마련하여 기존 조립공장의 크기를 넘어서 종합 자동차 공장과 그 안에 개발연구소를 설립했다. W1형 승용차’ 개발과 생산을 함께 했던 미국 기업이 차세대 모델 개발에 뜨뜻미지근한 반응을 보이자 이번엔 유럽권에서 기술제휴 또는 합작으로 신차를 개발할 회사를 찾아나선다. 하지만 그 누구도 쉽사리 기술제휴를 하러 나서지 않자, 윤성철은 자동차 엔진의 독자개발을 계획하게 된다. 그러나 최현식과 구재학은 그 누구도 기술제휴의 손길을 내밀지도 않고 현실적으로 독자개발을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윤성철의 독자개발 계획을 무시하거나 반대했으며, 끝내 셋은 각기 다른 뜻을 펼치며 동업자로서의 관계를 끝맺게 된다. | ||
1961년, 윤성철은 본격적인 자동차 엔진 독자개발에 착수하기 위해 해외 자동차기업에서 근무중인 월본인 기술자들에게 러브콜을 보내어 고향인 월본에서 함께 엔진 자체 개발 연구에 함께하자는 설득에 나선다. 수십여명에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연락을 취했으나, 그 중 단 2명만이 러브콜에 응하여 월본으로 귀국했으며 윤성철은 러브콜에 응해준 두 사람에게 개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충분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때 독자개발을 함께했던 두 사람은 바로 현성자동차 제1대 기술연구소장인 정영석 박사와 현성자동차 제1대 엔진연구소장인 박주일 박사이다. | 1961년, 윤성철은 본격적인 자동차 엔진 독자개발에 착수하기 위해 해외 자동차기업에서 근무중인 월본인 기술자들에게 러브콜을 보내어 고향인 월본에서 함께 엔진 자체 개발 연구에 함께하자는 설득에 나선다. 수십여명에게 다양한 방법을 통해 연락을 취했으나, 그 중 단 2명만이 러브콜에 응하여 월본으로 귀국했으며 윤성철은 러브콜에 응해준 두 사람에게 개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지원하겠다는 약속과 함께 충분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한다. 이때 독자개발을 함께했던 두 사람은 바로 현성자동차 제1대 기술연구소장인 정영석 박사와 현성자동차 제1대 엔진연구소장인 박주일 박사이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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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2년여간의 개발 끝에 ‘W2형 승용차’가 먼저 세상에 등장한다. 전작인 ‘W1형 승용차’보다 성능과 연비가 대폭 개선되면서 국내에서 크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현성자동차공업주식회사는 8천만달러를 투입하여 연간 30,000대 생산규모의 자동차 공장 건설에 들어간다. | 1969년, 2년여간의 개발 끝에 ‘W2형 승용차’가 먼저 세상에 등장한다. 전작인 ‘W1형 승용차’보다 성능과 연비가 대폭 개선되면서 국내에서 크게 관심을 받기 시작한다. 이를 통해 자신감을 얻은 현성자동차공업주식회사는 8천만달러를 투입하여 연간 30,000대 생산규모의 자동차 공장 건설에 들어간다. | ||
== 1970년대 == | |||
1970년, 이 공장에서 생산된 ‘W2형 승용차’는 1년동안 국내에서 9,000대가 넘게 팔리며 출시 2년째인 1971년에는 연간 4만대, 출시 4년째인 1974년에는 연간 9만대를 돌파한다. | 1970년, 이 공장에서 생산된 ‘W2형 승용차’는 1년동안 국내에서 9,000대가 넘게 팔리며 출시 2년째인 1971년에는 연간 4만대, 출시 4년째인 1974년에는 연간 9만대를 돌파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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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E1이 유럽에서 2천 대 이상 판매되며, 현성자동차 내부에서는 수출형 전략 모델 개발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한다. 같은 해, 현성자동차 연구소는 전자제어식 연료분사 시스템에 대한 내재화 연구에 착수한다. | 1978년, E1이 유럽에서 2천 대 이상 판매되며, 현성자동차 내부에서는 수출형 전략 모델 개발을 적극적으로 진행하기 시작한다. 같은 해, 현성자동차 연구소는 전자제어식 연료분사 시스템에 대한 내재화 연구에 착수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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